크리스마스 선물

내 기억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국민학교 1학년 때 받은 양배추 인형.
그 전엔 외할머니랑 살았으니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건 받은 기억이 없다.
시골성당의 크리스마스 자정 미사가 끝나면 나누어 먹던 잔치국수에서 피어나는 하얀 김과 어린이미사 후 나누어 주던 과자세트가 기억이 난다.
아무튼 1학년의 나는 갖고 싶은 게 참 많았다.
버튼을 누르면 뚜껑이 열리고 2층으로 되어 있는 자동필통도 갖고 싶었고,1학년에겐 금지되어 있던 샤프펜슬도 갖고 싶었고,기차모양의 연필깎이도 갖고 싶었지만 가장  갖고 싶었던 건 예쁜 공주 인형이었다.
마론인형이라 불리던 바비인형 같은 예쁜 인형...
그땐 바비보다는 미미인형이 대세였는데 난 인형이 하나도 없었다.
가진 건 종이인형뿐...
여유가 있었던 사촌여동생들은 미미인형에 인형의 집에 드레스들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지...
예쁜 인형을 간절히 소망했던 크리스마스 아침에 나는 손바닥만한 양배추인형을 받았다.
노란색 바지에 초록색 조끼를 입고 있던,하나도 예쁘지 않은 그 인형을 받고 많이 울었다.
울고 있는 내게 엄마는 우리는 형편이 어려워 그런 비싼 인형은 살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산타 할아버지 따위 믿지 않았고 기대가 없어 더이상 상처도 받지 않았다

한달 전부터 "울면 안돼"를 흥얼거리며"00이 말 잘 드르면 산타하부지가 XX주신대?"를 입에 달고 사는 아기를 위해 어른의 눈엔 쓸데없어 보이는 선물을 샀다
아기가 원하던 장난감을 포장하며 그때의 상처가 희미해지는 걸 느낀다.

by 깡패병아리 | 2014/12/23 23:29 | 우리 꼬꼬마 | 트랙백 | 덧글(0)

얘는 외탁만 했네

전에 친정에 갔을 때 아버지가 아기에게 카봇을 사 주셨다
변신로봇 시리즈는 사주지 않겠다 마음 먹었는데 아기는 어린이집 친구가 가지고 있는 카봇이 정말 부러웠나보다.
혹시나 전처럼 엄마가 환불하라고 할까봐 아예 박스 버리고 알맹이만 들고 왔다-.-
내 눈치를 살살 보며
"엄마 AA이도 있고 XX이도 있는데...00이도 카봇 갖고 싶어요."
아버지는 "얼마나 열심히 골랐는지 아냐.애가 로봇 이름을 다 알더라.그냥 둬라."하시고..
그 이후 아기는 잘 때도 데리고 자고,어린이집에도 데리고 가고 떼어놓질 않는다.
가끔 변신도 시켜가며(덕분에 나는 손 소근육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애지중지 한다.
주말에 시댁에 갔을 때도 당연히 가지고 갔지.
어머님이 보더니 누가 사줬냐고 물으시네
"용산 할아버지가 사주셨어요."
조금 있다가 어머님이
 "친정아버지가 00이 예뻐하시지?"
 "외손주는 하나 뿐이고 손주들 중에 가장 어리니까 예쁘신가봐요."
 "얘는 외탁만 했네.아범이랑 하나도 안 닮았다."

우리 아기 아빠 붕어빵이다.
심지어 뱃속에 있을 때 찍은 정밀 초음파에서도 판박이어서 사람들이 다 놀랐을 정도고 크면서 점점 더 닮아가는데 왜 저러시나..
그러니까 지금 애가 외탁을 해서 우리 친정에서만 예뻐하신다는 건가?친탁을 안 해서 어머님 눈엔 안 예쁘고?

어쩐지 애 한테 빵 하나를 안 사주시더라니...
밥 사주시겠다고 가자 해놓고 계산 할 때 사라지셨다 계산 마치고 나니  나타나 빵 사달라는 애 손 잡고 가게 들어가셔서는 애 손에 빵 들리고
"1500원이랜다.계산해라."
하시던 게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어머님이 장난감 사 주시는 거 바란 적도 없는데 저런 말 하시니 지난 일이 떠오르며 울컥했다.

듣다못한 남편이
"어머니 우리 00이 정말 예쁘지?"하니
"아니,난 우리 아들이 더 이쁘다."

앞으론 남의집 딸이랑 남의 집 딸 닮은 손주는 그냥 둘이 놀고 예쁜 어머님 아드님만 보내야겠다.

by 깡패병아리 | 2014/11/11 01:56 | 우리 꼬꼬마 | 트랙백 | 덧글(19)

20141024

아기 어휘력이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나날이 늘고 있다.

장난감 가게에서
"장난감 많이 있으니까 다음에 사자."
"엄마 그래도요."
"집에 많이 있지?오늘은 구경만 하고 다음에 와서 사자."
"엄마 제발요."
@@ 그래도,에 이어 제발까지...
얘가 도대체 이런 말들을 어찌 알고 정확히 쓰는 거지?
결국 새 토미카 하나 사들고 나옴

용산 외가에 갔는데 역시나 할아버지랑 같이 나가서 과자를 한봉지 사 들고 들어왔다.
접시에 담아줬더니 할머니 할아버지 입에 하나씩 넣어드린다.
이럴 때면 엄마인 나는 그래도 자식 교육 잘 시킨 거 같아 흐뭇해진다.
과자를 먹고 급히 물을 마시고는 자기가 갖고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카펫에  쏟아버렸는데 "네 이놈"하기가 무섭게
"잘못했어요.다신 안 그럴게요."한다.
엄마가 "저렇게 어른처럼 말을 하니 어떻게 혼을 내냐"하신다.
그러고는 지 에미 닮아서 그렇다고...

지 에미를 닮았다는 그 말에 마음 한켠이 아린 이유는 뭘까...

아가,너무 일찍 철들지 말아라
네가 원하는 것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일 때 마음껏 투정부리고 조르렴.
세상이 너에게 따뜻하고 모든 것이 가능했던 기억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엄마는 아직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아 행복하단다

by 깡패병아리 | 2014/10/24 14:18 | 우리 꼬꼬마 | 트랙백 | 덧글(0)

500원

아기는 500원짜리를 좋아한다.
지폐는 손에 쥐기가 마땅치 않고 100원짜리는 좀 작아서 흐뭇하게 손에 꽉차게 쥐어지는 500원짜리를 제일 좋아한다.
500원 동전의 주 용도는 핫도그 사 먹기
동네 재래시장 초입에서 할머니가 파시는 핫도그 한 개가 500원인데 잔돈통 구실을 하는 종이컵에 직접 500원짜리를 쨍그랑 소리 나게 던져 넣고 핫도그를 매우 신중하게 고른다.
매의 눈을 하고 한참 고르다가 "이거!"하고는 집는게 넘 우습다.
날이 추워지면서 할머니가 붕어빵으로 업종을 바꾸셔서 매우 아쉬워하는 중...

집에서 또 500원 동전을 가지고 놀다가
"엄마 500원으로  이 토미카 사주떼요"
"00아 토미카는 500짜리 10개 있어야 돼."
"우와 비싸네요(어디서 비싸다는 말을 배웠을까?--;).그럼 한 개로는 뭐 살 수 있어?"
"500원 한 개로는 핫도그 살 수 있어."
"그리구 또?"
"음...아 이오 한 개 살 수 있어."
"음,그대(그래)?"

나 어릴 적엔 100원 하나 가지고도 할 수 있는게 참 많았는데...
리어카 개조해서 아저씨가 몰고 다니던 스프링 목마타기,트램펄린(덤블링이라고 불렀던)10분 타기,떡볶이 1인분,학교 앞 핫도그 2개,새우깡 작은 거 한 봉지,아폴로 1개,쭈쭈바 2개...
또 뭐가 이더라?
아 초등학생이면 버스를 두 번 탈 수 있었다.

그땐 엄마가 주시는 100원짜리 하나면 하루가 참 행복했는데...

by 깡패병아리 | 2014/10/20 16:57 | 우리 꼬꼬마 | 트랙백 | 덧글(2)

20141019

어제 아기가 많이 아팠다.
오전에 잘 놀다가 폴리비타민 줄까? 했더니 안 먹겠단다.(이런 일은 극히 드문 일)
깜짝 놀라서 열을 재 보니 38도.
일단 이마에 쿨링시트를 붙이고 좀 지켜봤다.
점점 열이 올라 39.9도까지 올라 해열제를 먹이고 업어줬더니 살풋 잠이 들었다.
열에 달아올라 발그란 볼을 하고서 "업어 주세요."하는데 어찌나 안스럽던지...
힘들면 안아달라고는 해도 업어달라고는 안 하는데 많이 힘들었나보다.
작은 팔로 내 목을 꼭 감고 매달려 있는 아기에게서 열과 힘든 숨소리가 전해져 온다.
한시간쯤 자고 일어나더니 배가 고픈지 국수를 달라고 조른다.
열도 좀 잡힌 것 같고 식욕이 돌아와서 다행이다 싶어 갈비탕 국물에 국수를 말아 줬다.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먹고 잘 놀다가 슬슬 다시 열이 올라 또 약을 먹이고 토닥토닥 재웠다.
자정 쯤에 갑자기 왈칵 다 토하며 일어나서 엄마를 찾는다.
요랑 침대커버를 걷어 대충 애벌빨래를 하고 약을 먹이고 또 아기를 업었다.
한 시간 정도 아기를 업고 서성거리며 외할머니가 어릴 때 불러주셨던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아기를 낳고 재우면서 30년 넘게 잊고 있던 그 노래들이 아무 생각없이 흘러나와 처음엔 나도 깜짝 놀랐다.
아플 때 할머니가 날 업고 사립문을 왔다갔다 하시며 노래불러주시던 기억,사과를 놋숟가락으로 긁어서 떠먹여 주시던 기억,마른 홍합이랑 새우를 갈아 죽을 쑤어 먹여주시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가 아플 때 날 업고 밤을 지새우셨던 할머니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이 작은 아기 대신 내가 아플수 있다면...저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엄마라고 아플 때 엄마한테 꼭 붙어있는 아기가 애처롭고 고맙다.
이 아이 말고 그 누가 나를 이토록 필요로 하고 믿고 의지할까...
잠이 든 아기 옆에서 부채질을 해 주고 열을 재다가 새벽 5시 넘어 나도 잠이 들었다.
8시쯤 눈을 뜬 아기가 "엄마 배고파요."한다.
다행히 열이 내리고 일어나자 밥을 찾는 것이 괜찮겠다 싶어 얼른 조기를 굽고 뜨거운 밥을 차가운 보리차에 말아 같이 먹였다(우리 아기가 제일 좋아하는 식단)
배가 고팠는지 "더 주세요" 해 가며 열심히 받아먹는다.
미열이 남아있긴 하지만 잘 먹어주고 밖에 나가자 조르는 걸 보니 괜찮겠다 싶어 마음이 놓인다.

아가, 오래 아프지 않고 금방 나아줘서 고마워.
내 등에 매달린 너의 무게도,너의 숨소리도 엄마에겐 안타까울 만큼 소중해
너를 키우며 나는 이리 행복하니 훗날에 절대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따위의 말은 입에 담지 않으련다.

by 깡패병아리 | 2014/10/19 18:44 | 우리 꼬꼬마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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