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9

어제 아기가 많이 아팠다.
오전에 잘 놀다가 폴리비타민 줄까? 했더니 안 먹겠단다.(이런 일은 극히 드문 일)
깜짝 놀라서 열을 재 보니 38도.
일단 이마에 쿨링시트를 붙이고 좀 지켜봤다.
점점 열이 올라 39.9도까지 올라 해열제를 먹이고 업어줬더니 살풋 잠이 들었다.
열에 달아올라 발그란 볼을 하고서 "업어 주세요."하는데 어찌나 안스럽던지...
힘들면 안아달라고는 해도 업어달라고는 안 하는데 많이 힘들었나보다.
작은 팔로 내 목을 꼭 감고 매달려 있는 아기에게서 열과 힘든 숨소리가 전해져 온다.
한시간쯤 자고 일어나더니 배가 고픈지 국수를 달라고 조른다.
열도 좀 잡힌 것 같고 식욕이 돌아와서 다행이다 싶어 갈비탕 국물에 국수를 말아 줬다.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먹고 잘 놀다가 슬슬 다시 열이 올라 또 약을 먹이고 토닥토닥 재웠다.
자정 쯤에 갑자기 왈칵 다 토하며 일어나서 엄마를 찾는다.
요랑 침대커버를 걷어 대충 애벌빨래를 하고 약을 먹이고 또 아기를 업었다.
한 시간 정도 아기를 업고 서성거리며 외할머니가 어릴 때 불러주셨던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아기를 낳고 재우면서 30년 넘게 잊고 있던 그 노래들이 아무 생각없이 흘러나와 처음엔 나도 깜짝 놀랐다.
아플 때 할머니가 날 업고 사립문을 왔다갔다 하시며 노래불러주시던 기억,사과를 놋숟가락으로 긁어서 떠먹여 주시던 기억,마른 홍합이랑 새우를 갈아 죽을 쑤어 먹여주시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가 아플 때 날 업고 밤을 지새우셨던 할머니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이 작은 아기 대신 내가 아플수 있다면...저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엄마라고 아플 때 엄마한테 꼭 붙어있는 아기가 애처롭고 고맙다.
이 아이 말고 그 누가 나를 이토록 필요로 하고 믿고 의지할까...
잠이 든 아기 옆에서 부채질을 해 주고 열을 재다가 새벽 5시 넘어 나도 잠이 들었다.
8시쯤 눈을 뜬 아기가 "엄마 배고파요."한다.
다행히 열이 내리고 일어나자 밥을 찾는 것이 괜찮겠다 싶어 얼른 조기를 굽고 뜨거운 밥을 차가운 보리차에 말아 같이 먹였다(우리 아기가 제일 좋아하는 식단)
배가 고팠는지 "더 주세요" 해 가며 열심히 받아먹는다.
미열이 남아있긴 하지만 잘 먹어주고 밖에 나가자 조르는 걸 보니 괜찮겠다 싶어 마음이 놓인다.

아가, 오래 아프지 않고 금방 나아줘서 고마워.
내 등에 매달린 너의 무게도,너의 숨소리도 엄마에겐 안타까울 만큼 소중해
너를 키우며 나는 이리 행복하니 훗날에 절대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따위의 말은 입에 담지 않으련다.

by 깡패병아리 | 2014/10/19 18:44 | 우리 꼬꼬마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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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irisame at 2014/10/19 23:13
깡패병아리님 글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와요T-T 우우 엄마...
부디 아기가 예쁜 마음 그대로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파도 재난도 비껴가기를.
Commented by 깡패병아리 at 2014/10/19 23:30
피할 수만 있다면 세파도 재난도 비껴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엄마들 마음이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아이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실질적 도움이 못 되더라도 그래도 고된 삶 잠시 기대쉴 수 있는 나무같은 부모가 되는 것이 제 바램이에요
Commented by ASDF at 2014/10/20 03:01
슈퍼가는데, 가족끼리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있더라구요

엄마 등 뒤를 어린 애가 껴안고 있는데

보기 좋았습니다.

이 글도 그런느낌이네요 ㅎㅎ
Commented by 깡패병아리 at 2014/10/20 23:02
아기와 엄마가평화롭게(이게 중요^^) 함께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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